최신판례
내용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목적에서 제출한 사직서는 무효
사건번호 : 서울고법 2019나2029189
선고일자 : 2020-02-11
주 문
1.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2.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2017.6.27.자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한다.
3. 소송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기초사실
가. 피고는 태권도의 승품, 승단 심사 및 태권도 보급을 위한 교육사업 등을 영위하는 단체이고, 원고는 2008.12.28. 피고에 입사한 근로자이다.
나. 서울강남경찰서는 피고의 전 대표자인 오○○ 원장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입건하여 수사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원고는 2017.5.25., 2017.6.10., 2017.6.24. 등 수차례에 걸쳐 서울강남경찰서에 출석하여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다. 오○○은 2017.6.21. 원고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원고가 위 참고인 조사에서 어떤 내용으로 진술하였는지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대화 도중 원고는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합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된 사직서(이하 ‘이 사건 사직서’라고 한다)를 즉석에서 수기로 작성하여 오○○에게 교부하였고, 피고는 2017.6.27.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하였다.
라. 오○○은 구속기소 되었고, 업무방해 등의 범죄사실이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을 선고받아 확정되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호증, 갑 제3호증의 1 내지 3, 갑 제8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당사자의 주장
원고는, ‘경찰조사에서 오○○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았고, 오○○의 범죄혐의 제보를 주동한 사람이 원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하여 오○○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교부한 것으로서, 이 사건 사직서 제출은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무효이고, 이를 수리하는 행위는 실질적인 해고에 해당하는데, 원고를 해고할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위 해고는 무효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가 경찰조사에서 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였고, 이러한 사실이 오○○에게 알려져 오○○과의 신뢰관계가 무너지자 더 이상 오○○을 모시기 힘들다며 이 사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서, 원고와 피고의 근로관계는 원고의 사직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종료되었다고 다툰다.
3. 판단
가.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고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다고 하더라도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대법원 1993.1.26. 선고 91다38686 판결 등 참조).
나. 갑 제2호증의 4, 갑 제3호증의 3, 갑 제5호증의 1 내지 4, 갑 제7호증의 1 내지 3, 갑 제8호증, 을 제1 내지 3호증, 을 제5호증의 각 기재와 당심의 원고본인신문결과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의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는 사직의 의사 없는 원고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후 이를 수리한 것으로서, 피고가 2017.6.27.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한 행위는 해고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고, 거기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 해고는 무효이며, 피고가 이를 다투는 이상 원고로서는 확인을 구할 이익도 있다.
1) 원고는 2017.6.21. 오○○과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피고의 노동조합 위원장인 나○○을 찾아가 ‘오○○으로부터 허위진술 강요 및 진술번복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억울하게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였다’고 말하며 자문을 구하였다. 이에 나○○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도록 조언하였고, 원고는 2017.6.21. 당일 노동조합에 가입하였으며, 피고의 노동조합은 같은 날 피고의 사무총장에게 원고가 2017.6.21.자로 노동조합에 가입하였음을 알리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또한 원고는 2017.6.24.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원측에서 억압이나 회유를 하지 않고 있나요’라는 사법경찰관의 질문에 대하여 ‘2017.6.21. 제가 ○○원 원장실에 들어가자 오○○이 니가 사건 주모자라고 참모들이 이야기하는데 맞냐고 하여 제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지 말라 그랬더니 자기는 니가 주모자로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참모들이 자르라고 해도 참고 있다면서 주모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한테 확인시켜 줄 수 있냐 그럼 니가 나한테 사표를 써 줄 수 있냐고 하여 제가 어떤 내용으로 사표를 쓸까요 하고 묻자 일신상의 문제로 사표를 써 달라고 하여 제가 원장실에서 직접 작성하였다’라고 진술하여,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던 당시의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다.
나아가 피고가 2017.6.27.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하자, 원고는 2017.7.12.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직원지위확인가처분을 신청하였고, 2017.7.25. 오○○을 강요 등의 혐의로 고소하였으며, 2017.9.19.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는 등 이 사건 사직서의 수리를 다투는 법적 조치를 지체 없이 취하였다.
원고의 이러한 행위들은 진정한 사직의 의사로 사직서를 제출한 사람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2) 원고가 2017.6.21.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기 전에 사직을 고려한 적이 있었다거나, 사직을 고려할 만한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사직과 관련한 어떠한 표현을 하였다는 등의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전혀 없다.
그리고 원고는 2017.6.21.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던 당일에도 해외 출장에서 돌아와 자신의 근무지인 무주 소재 연수원으로 내려가던 중 서울 소재 오○○의 사무실로 오라는 지시를 받고 오○○의 사무실을 방문하였다가 즉석에서 수기로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한 것으로서, 이 사건 사직서 작성 직전까지도 근무지에 복귀하여 근무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원고는 2017.6.21. 오○○과 대화를 마치고 당일 저녁 무주 소재 연수원으로 복귀하여 그 다음날부터 정상적으로 근무하였으며, 2017.6.24. 무주에서 개최된 무주W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내빈에 대한 접대를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이 사건 사직서의 작성·제출을 전후하여 원고에게 진정한 사직의 의사가 있었음을 추단할 수 있는 사정들을 찾을 수 없고, 이러한 원고가 오○○과의 대화 도중 갑자기 사직의 의사를 가지게 된 특별한 사정변경으로 무엇이 있었는지에 관하여 피고는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고 있지 아니하다.
3) 이 사건에 제출된 각 사실확인서에서, 피고의 노동조합 위원장 나○○은 ‘2017.6.21. 원고가 자신을 찾아와 오○○으로부터 허위진술 강요 및 진술번복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했다고 말하였다’고 진술하였고, 이 사건 사직서 작성 당시 원고의 근무지인 피고 연수원의 원장 김○○은 ‘오○○이 원고에게 경찰의 채용비리 및 공금횡령 수사사건을 제보한 주범이 원고라고 하면서 원고가 주범이면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며 주범이 아니라면 사직서를 써 줄 수 있냐는 강요에 못 이겨 사직서를 써 주었다는 얘기를 원고로부터 들었다. 주범이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되지 왜 사직서를 써 주었냐고 원고에게 화를 내자, 원고는 주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써 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였다’고 진술하였으며, 피고의 직원 이○○, 김△△ 등도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원고는 자신이 주모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오○○의 요구에 따라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한 것이므로 이 사건 사직서를 수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비록 이들이 원고와 오○○ 사이의 대화를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고 원고로부터 전해들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전해들은 시점이 이 사건 사직서가 작성된 당일 또는 그 직후인 점, 이들의 진술 취지가 모두 일치하는 점, 나○○은 원고로부터 얘기를 들은 후 원고를 노동조합에 가입시키는 등 실제 조치를 취하기도 한 점, 김○○은 ‘사직서를 왜 써 주었냐고 화를 내었다’는 등으로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점, 이들과 반대의 취지로 진술하는 다른 사람의 진술서 등은 제출되지 아니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각 사실확인서의 진술들을 쉽게 배척할 수 없다.
4) 원고는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기 전에도 오○○에게 사직서를 3번 제출한 사실이 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오○○이 자신에 대한 원고의 충성심이나 신뢰를 확인하기 위하여 사직서 작성을 요구하였다고 주장하고, 피고는 원고의 방만한 근무태도가 문제되자 반성하고 있다는 표현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바, 어느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와 오○○ 사이에서는 실제로 사직할 의사 없이 형식적으로 사직서가 작성·수수된 경험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진정한 사직의 의사 없이 오○○에 대하여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용도로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교부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에 부합한다.
5) 원고는 2017.5.25. 경찰조사를 받은 후 2017.6.10.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2017.6.8. 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에서 오○○은, 원고가 경찰조사에서 오○○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한 것을 의심하면서, 향후 있을 추가조사에서는 원고의 종전 진술을 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번복하도록 종용하였고, 원고는 오○○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한 사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였는데, 그 대화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오○○ : 그렇다면 니가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진술했는지는 내가 모르겠다. 그 내가 들은 바에는 ‘처음부터 부원장 그런 의도 없이 해서 나는 구매해 가지고 부원장 다 줬다’이렇게 진술했다는 첩보를 들었어요.
원 고 : 그거는 뭐 일단 보시면 아시겠죠 거기 그
오○○ : 응 그러니까 내가 그래서 내가 음 만일에 그러면 니하고 딜을 한번 하자. 만일에 니가 이거 진술했다면 어떻게 할래?
원 고 : 아니 거기 내용 보시면 알겠지만
오○○ : 아니 그러니까 니가 그렇게 진술했다면 어떻게 할래? 니 양심을 걸고
원 고 : 아니 지난번에 원장님한테 말씀하신대로 뭐 제가 사표를 쓰든지 뭐 해야 되겠죠
오○○ : 아 그래?
원 고 : 예
오○○ : 아무튼 그러면 그렇게, 그렇게 하자
*****
피고는 위 대화 내용을 근거로 원고가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기 이전에 이미 사직의 의사를 표시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 대화 내용에서 보듯이, 오○○이 “딜을 한번 하자”라고 말하면서 ‘오○○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한 것’이 밝혀지는 경우의 제재조치를 요구한 것에 대하여 원고가 ‘사표를 쓰든지 해야 되겠죠’라고 언급한 것으로서, 이러한 원고의 발언이 진정한 사직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위 대화 내용에 의하면, 오○○이 경찰조사와 관련하여 원고를 압박하면서 그 압박의 수단으로 사직서 작성이 거론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6) 원고는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한 직후 노동조합장 나○○을 만나 ‘결백을 증명하는 용도로 어쩔 수 없이 이 사건 사직서를 작성하였다’는 취지로 말한 이래 위 가처분 사건, 오○○에 대한 고소 사건,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을 거쳐 이 사건의 당심 변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같은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하여야 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2017.6.27.자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판사 박영재
판사 박혜선
판사 강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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